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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아렌트(Hannah Arendt) 악의평범성에 대한 고찰... 세월호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에게 고하다
    상식적인 이야기 2014. 10. 14. 10:19

     

     

     

    오늘 아침 구글메인페이지 캡쳐 화면입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한 여성의 탄생 108주년을 기념하고 있네요.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다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눈길이 갑니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고 해야할까요?

     

    그녀는 악(惡)에 정의를 일상생활의 평범함(banality) 속에서 찾았는데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이나 비(非)활동이 낳을 결과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다수의견에 따르려 하는 경향을 또다른 악으로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 결과적으로 악의 진부함을 낳는다는 결론을 내렸는데요, 자본주의 사회에 길들어져 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일갈' 같습니다. 

     

    '마치 죽어 있는 듯하며 '생각없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수용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악인이라고 말하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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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아렌트의 흔적을 쫓으며 이미 고인이 되신 두 분이 떠올랐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과, 故 김대중 대통령님

     

    두 분은 비슷한 맥락의 명언을 남기셨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저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에서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말씀을 남기셨지요.

     

    이와 반대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는 말씀을 통해 민주주의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침묵하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한나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철학적 사고와 너무나 일치합니다.

     

    세월호 대참사도 이제 이틀후면 6개월이 됩니다.

     

    이 6개월의 시간동안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좌우로, 세대간으로 극단적인 분열이 나타나더니 이제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참사 초반에는 내일처럼 가족들의 슬픔을 공감하였지만 지금은 이들을 비난하거나 그만하라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절반 정도 됩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서도 대부분이 남의 일인 것처럼 관심도 전혀 없고 그냥 덮자는 사람도 많습니다.

     

    언론의 보수화로도, 정치권의 무능함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한나 아렌트의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 이 시대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 같네요.

     

    천민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온 우리들의 모습이 더해져서요...

     

    '자본주의 사회에 살려면 자신의 생각 따위는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요...'

     

    같이 깨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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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B%82%98_%EC%95%84%EB%A0%8C%ED%8A%B8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 1975년 12월 4일)는 독일 출신의 정치 이론가

     

    그녀의 생애

     

    아렌트는 당시 독립적이었던 린덴(지금은 하노버의 일부)에서 세속적 유대인 집안에 태어났으며 쾨니히스베르크(이 도시는 그가 존경한 선구자 이마누엘 칸트의 고향이었다)와 베를린에서 자랐다. 그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그와 길고 산발적인 연애 관계에 있었는데, 이후 나치에 적극 협력하던 그에게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되어 그를 떠나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입각하여 사랑의 개념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1929년에 출판되었으나, 아렌트는 1933년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 취득(하빌리타치온; 독일에서의 교수 자격 취득)을 금지당했으며 따라서 독일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도 좌절되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피신하여 파리 시로 갔다. 파리에서 그녀는 문학 평론가이며 마르크스 신비주의자인 발터 베냐민과 친구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아렌트는 유대계 망명자들을 돕기 위해 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한 뒤 독일이 프랑스 일부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강제 이송되게 되자, 아렌트는 프랑스에서 도주해야 했다.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1941년에는 아렌트를 포함하여 2500명 정도 되는 유대계 망명자들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발행해 준 미국 외교관 하이램 빙엄 4세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그 뒤 독일 출신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주간 〈아우프바우〉(Aufbau)지에 기고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회복했으며, 독일 비(非)나치스화 청문회에서 하이데거를 위해 증언했다. 이는 평소 하이데거를 깊이 존경하던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의 권유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일 그녀가 하이데거의 정부로 대학시절부터 불륜관계였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비록 그가 나치에 협조하였다는 과오가 있었을지라도 그의 사상과 철학이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 그녀가 증언했다는것도 거짓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950년에 그녀는 미국 귀화 시민(naturalized citizen)이 되었으며,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완전한 교수직에 지명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성과 :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이었지만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유태인 숙청 광풍 속에서 가까스로 프랑스, 뒤이어 미국으로 탈출했다. 따라서 그녀는 홀로코스트에 실존적인 차원의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0년에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했다.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아이히만은 기소되어 1961년 4월 11일 공개재판[2]이 진행되었는데, 한나 아렌트는 이를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사상을 주장하게 된다. 이 책이 바로 오늘날 명저로 평가받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1963년)>이다. 책의 형식은 아이히만의 재판 참관기이지만, 부제인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가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아이히만은 슈츠슈타펠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이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쉽게 말해서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악이 딱히 어떤 악마적인 것에 기원하는 게 아니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비판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바로 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아이히만의 사례를 들면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던 일이 타인(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아렌트의 의견과도 동일하다.

    다만 아렌트의 주장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론 내용은 아이히만은 결코 아렌트가 주장한 대로 명령에만 충실하게 따르는 '평범한' 관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주장은 그가 강한 반유대주의 성향을 보이는 급진적인 나치당원이었고, 인종적 정화에 집착했으며[6], 오스트리아에서 1933년에 독일로 이주하기 이전부터 이미 열성적인 친위대 행동원이었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의 범죄는 전체와 평범함으로 희석시킬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히만은 1956년부터 자신의 범죄를 변호할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받을 점이다. 애초에 계획적으로 자신을 불쌍한 이미지로 재판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다만 독일에서의 재판을 상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학자들의 반론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렌트는 역사학자라기 보단 윤리 철학자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렌트의 목적은 아이히만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라는 주장하에서 아이히만을 예로 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8] 또한 아렌트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극도로 분개하지 않은 것 때문에 유대 공동체들로부터 과도하게 비난을 받은 것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가 분석하고 관찰한 아이히만은 권력욕이 세고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이었고, 그의 반유대주의 사상이나 나치즘은 이러한 명예욕을 실현시킬수 있는 수단이었다. 실제로 그가 유대인 이주정책을 맡았던 1938년은 나치의 최종 해결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1941년 이전이었으며, 38년 당시에는 시온주의자들과의 모종의 협력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독일계 유대인들도 수천명가량 존재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동정으로 인해 유태인들을 유럽 바깥으로 이주시킨것도 아니었으며 이후 최종 해결책이 시행됐을 때에도 유태인에 대한 증오때문에 홀로코스트를 자행한것이 아니라고. 다만 중요한 것은,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생각하지 않은 죄"라고 했다고 해서 그의 사형선고 자체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히만은 사형선고를 받고 1962년 5월 31일 교수대에서 황천길로 갔다. 그의 죄를 전혀 후회하지 않으면서.

    참고로 아렌트는 '이것은 유대인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앞으로 등장할 미증유의 인류 범죄를 다루기 위한 선례를 위해서라도 국제법정으로 처리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의 주장에 대한 해석은 이는 악이라는 것의 실체가 한 사람의 개별적인 속성보다 집단의 분위기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사람이 하는 같은 행동이 그가 속한 집단과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도 왕따나 집단 폭력, 인종차별주의나 국수주의로 인한 범죄 등을 집단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한 개인(혹은 작은 집단)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결국 이런 인간들을 가리켜 악의 평범성이라 하는 거겠지도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된다. 사실 이 사건에서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이스라엘이 2차 대전 직후 독립한 뒤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에게 하는 비인륜적인 학살 등의 행동을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그녀는 악이 근본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진부함(banality;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이나 비(非)활동이 낳을 결과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다수의견에 따르려 하는 경향)의 작용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 결과적으로 악의 진부함을 낳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는 철저히 파편화되고 소외된 개인들과 그들의 수동적이고 마치 죽어 있는 듯하며 '생각없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수용하는 생활에 던져진 강렬한 메시지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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